푸른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한 숟가락의 마법, 제주 어간장

By on 5월 13, 2013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넣는 국간장, 조리거나 볶을 때의 진간장, 겉절이 담당 까나리액젓, 양념간장들을 두루 아우르는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올가 제주 전통 어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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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간장보다 유구한 어간장의 역사
장은 콩으로 만든다. 그리고 고기로도 만들고 생선으로도 만든다. 최초의 장은 고기를 소금에 절여 만든 고기장이었을 것으로 본다. 생선이 흔한 바닷가 주변에서는 생선으로 만들었고, 콩을 재배하면서부터 비로소 콩간장을 먹기 시작했다. 어간장의 역사는 이렇듯 콩간장보다 더 유구하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쉬 소스도 따지고 보면 어간장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와 남해를 비롯한 바닷가 마을에서 어간장을 담가 먹었다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형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행히, 친환경식품전문점 올가에 가면 그 옛날 제주에서 먹던 전통 어간장을 만날 수 있다.
젓갈과 고기가 있는 숲, 해어림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바람이 자유롭게 오고 가는 양지 바른 그곳에 올가의 어간장을 만드는 해어림이 있다. 해어림은 “젓갈과 고기가 있는 숲”(젓갈 ‘해’, 고기 ‘어’, 수풀 ‘림’)이라는 뜻으로, 해어림의 주인 문순천, 오숙영 씨 부부가 일출봉을 마주하고 있는 이곳에 해가 가득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아 지은 이름이다. 단정한 양옥집 모양의 공장 앞마당으로 들어서니 짭짤하고 달큼한 장 냄새가 솔솔 풍겨져 나온다. 비릿한 바다 냄새도 배어 있다. 마당 한쪽에서는 무말랭이가 꼬들꼬들 말라가고 있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나지막한 사무실 옥상에 자리잡은 수백 개의 옹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하늘 반, 바다 반의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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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고기 이슬, 어로, 어간장
여러 생선으로 만든 어간장은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의 뛰어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어간장의 단백질 함유량은 콩간장보다 훨씬 많습니다. 미네랄, 불포화지방산, 칼슘들도 더 풍부하고요.” 제주에서 나고 자란 문순천, 오숙영 씨 부부가 기억하는 고향 풍경은 이렇다. “집안 대나무 숲 아래에는 꼭 젓갈 단지가 있었어요. 숨바꼭질 할 때 그곳에 숨으면 비가 올 때도 눅눅하지 않아 무척 좋았지요.(웃음) 늘 건조한 곳이라서 발효가 더 잘 되었나 싶기도 합니다.”
잘 발효한 액젓을 곱고 촘촘한 천에 걸러 옹기에 담아 다시 발효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제주의 전통 어간장이다. 어간장의 본래 이름은 ‘어로’, 곧 고기 이슬이다. 액젓을 거를 때 천에 맺혀 떨어지는 모양이 마치 이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참 근사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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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다고 모두 그때 그 간장일까?
제주에는 고추장 문화가 없다. 신선한 바다 먹거리에는 그저 담백한 어간장 하나로 충분하다. 어간장은 간인 동시에 훌륭한 천연 조미료이기도 한 셈이었다. 매일 삼시세끼 제주 사람들과 함께하던 어간장이 감쪽같이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한 건 역시 값싼 화학 간장의 영향이 크다. 오랜 시간 발효의 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전통 어간장(콩간장도 마찬가지이지만)의 자리는 화학적 방법으로 신속하게 생산해낸 산분해 간장, 방부제, 보존료, 화학적 합성첨가물들을 넣은 간장 닮은 간장들이 차지했다. 최근 전통 발효식품, 자연식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름만 ‘전통’ ‘발효’ ‘자연’인 간장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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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간장’과 액젓, 분명히 다르다
문씨 부부가 어간장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은 지도 벌써 십 수년이 훌쩍 지났다. 제주 전통 어간장을 다시 살린 것도 이들이고, 한국식품연구원에 올라있는 제주 전통 어간장의 품질 규격도 해어림이 만들었다. 곧, 해어림에서 만든 ‘올가 제주 전통 어간장’이 진짜 제주의 어간장인 거다. 어로, 어간장이라는 말도 오직 해어림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최근 비슷한 모양새의 간장들이 출시되는데 해어림의 것과는 어떻게 다를까. “제주 어간장 같은 형태의 어장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제주 어간장은 식품 유형이 효소분해 간장인데, 다른 것들은 액젓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지요.” 액젓은 어류에 천일염을 뿌려 삭힌 액이고, 어간장은 1차 숙성된 액젓에서 비린내를 없애고 패류나 해조류를 첨가하여 2차 숙성한 것이니 분명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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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갓 잡은, 어린 전갱이와 고도리
콩간장을 만들기 위해서 콩을 삶고 메주를 빚듯, 어간장을 만들려면 생선을 삭혀 액젓을 만들어야 한다. 어간장의 주원료가 되는 생선은 5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 제주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등푸른 생선, 곧 전갱이와 고도리(고등어 새끼)이다. 구이용이나 찌개용이라면 11월 이후의 것이 기름이 차서 더 맛있지만 어간장을 만들려면 기름이 많으면 안 된다. 비리고, 지방층이 많아 잘 걸러지지 않기 때문에 액젓의 양은 적지만 가느다란 한 뼘 크기의 어린 고등어와 전갱이만을 쓴다. 고기는 매일 하루 두 번, 동이 트기 전과 해가 지기 전에 바다에서 나가 거둬온다. 정치망(고기들이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쳐두고 고기가 그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리는 자연적인 어획법)을 이용해 잡기 때문에 상처가 없어 횟감으로도 으뜸이다. 깔끔한 어간장 맛을 내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다. 전갱이와 고등어 다음으로 중요한 건 소금의 질과 양이다. 소금의 질은 전갱이, 고등어와 함께 액젓의 품질을 좌우한다. 소금은 3년 동안 묵힌 신안 천일염만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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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지나야 진짜 고기 이슬
1년 3개월 이상 저온 숙성시키면 포도주처럼 맑은 액과 가시만 남는데, 이를 고운 천에 받쳐 거르면 붉은빛이 도는 맑은 액젓이 된다. 액젓에서는 뜻밖에 비린내가 아닌 단내가 먼저 올라온다. 짜지도 않고 어찌나 담백하고 감칠맛이 도는지, 이 상태로도 충분히 맛있는 액젓은 다시 옹기에 담아 6개월 이상 2차 숙성시킨다. 이때 제주의 무로 만든 무말랭이와 완도산 다시마, 제주 밀감을 자숙 처리해 얻은 엑기스를 함께 넣어 시원함과 감칠맛, 향긋함을 더한다. “어간장은 최소 3년이 지나야 제 맛이 납니다. 4년이 넘어서면 발효가 끝나고 서서히 농축되기 시작하지요. 염도에는 크게 변화가 없는데, 오래 묵을수록 더 달아지고 감칠맛이 깊어집니다.” 특히 올가의 것은 모두 3~5년산이라니 그 맛과 향은 당연히 더, 제주의 바다, 햇볕, 바람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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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의 과학까지 더했다
올가에서 전통 제조법 못지 않게 신경을 쓰는 부분은 위생상태다. 풀무원 식품안전센터와 올가 식품안전팀을 통해 원료부터 숙성방법, 생산라인의 위생상태 등에 대해 1년에 최소 2번 이상, 많게는 3~4번 이상의 검사가 이루어진다.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의 경우 제조과정의 특성상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기에 미생물 및 균 검사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데, 해어림의 경우 작업장 곳곳이 간장 향과 간장 병만 아니라면 연구소로 여겨질 만큼 청결 상태가 뛰어나다. 해어림과 올가가 서로 인연을 맺은 지 10년. 해어림의 제대로 잘 만든 어간장을 알아본 최초의 고객이 올가이고, 올가의 까다로운 요구들을 매번 기꺼이 챙겨내는 해어림이고 보면, 새까만 어간장에 무한 신뢰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싶다. 어간장의 쓰임은 국, 찌개, 무침, 조림 등 경계가 없을 만큼 다양하다. 밥 지을 때 빼고는 어디든 넣어도 된다. 김치를 담글 때도 액젓 대신이며, 심지어 라면을 끓일 때도 요긴하다. 라면 스프는 반만 넣고 올가 제주 전통 어간장으로 나머지 간을 맞추면 된다. 어간장 맛의 깊이를 알아야 희한한 화학 합성첨가물로부터 멀어져 진정 바른 먹거리 실천이 가능하지 않을까.

글. 한정혜 (자유기고가)
사진. 톤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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